묵상글

하느님의 자비 주일 묵상 by 정요한

자유롭게 생각하고 평화를 이야기 합니다. 2025. 4. 27. 07:17
반응형

프란치스코 교황님

                                                                      두봉주교님

 

 

세월이 흘러 누군가 2025년 4월에 가톨릭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묻는다면

훌륭한 두 분을 주님께 봉헌했다고 말하리라. 프란치스코 교황과 두봉주교.

 

즐겨 성체앞에 머물고 성모마리아를 공경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위엄과 기품으로

어떻게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할지 행동으로 보여주신 분이시다. 개인주의와 SNS가 팽배하는 시대에 트위터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신앙의 결정을 담아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또 한분은 푸른눈의 한국인 두봉주교님이시다. 마이크를 잡으면 꼭 두견새 두자에 봉우리 봉자로 자신을 재미있게 소개 하시던 두봉 주교님. 마이크를 잡으면 일단 크게 웃고 스쿨버스를 타서 해맑게 재잘거리는 유치원 아이 처럼 늘 기뻐하시며 삶의 기쁨을 전달하신 분. 그래서 두분은 장소가 바티칸이든 경북 의성이든 간에 이웃과 어울리고 듣고 약자를 배려하며 아픔을 함께 하셨다.

 

부활2주는 주님 자비주일이다. 2025년 자비주일에는 토마스사도가 예수님의 부활현장을 혼자서만 보지 못해서 믿지 않다가 예수님 부활이후 여드레쨋날 다시 나타나셔서 “내 못자국에 손을 넣어 보아라” 하시자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 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복음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직접 뵐수는 없다. 억지로 보고자 하면 하느님의 그림자.실루엣을 겨우 볼 정도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과 두봉주교 처럼 오랜기간 성체를 영하고 그분앞에서 성찰을 하며 기도생활을 하신 두분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어렴풋이 알수가 있다.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신 분이시기에 두분의 죽음도 스토리가 있었다.

 

 

두봉주교님은 2025년 4월 6일 (주일)에 뇌경색이 왔고 다행이 방문중이던 교우들이 계셔서 안동병원으로 곧바로 이동하여 뇌경색 시술을 받았다 한다. 시술 직후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의 병문안을 시작으로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 신부님들의 병문안이 있었다.주교님의 상태가 호전되어 4월 10일(목)오후에 중환자실을 나와 일반병실로 옮겼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시며 의사를 표현 하셨다. 병실을 지키고 있던 사무처장 신부에게 주교님께서 무언가를 말씀 하시려듯 하여 “주교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라고 물으니 주교님께서 힘겹게 새어 나오는 듯한 음성으로 “성사”라고 표현을 하셨다.

다시 한번 사무처장 신부가 “고해성사요?” 하고 물으니 “예” 라고 답하셨고,

비록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 하진 못하셨지만 고해성사를 하시고 한결 편안한 모습으로 계셨고 이후”감사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을 하셨다 한다.

 

그러나 오후4시 이후 호흡이 불안정해지시고 기력을 잃기 시작하셔서

4월 10일(목) 저녁 7시경 권혁주 안동 교구장 주교님이 병문안을 가서 임종을 돕는 기도를 교구청 사제들과 함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2025.4.14일자 기사 발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뇌졸증과 그에 따른 혼수상태와 돌이킬수 없는 심부전이 사망원인으로 밝혀졌다. 4월 20일 부활절미사에 성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깜짝등장 하셔서 교우들을 축복하셨는데 “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신 것을 아시고 끝까지 교우신자들과 함께 하시길 원해 나타나신 것 같다며 세상과 단절된채 병원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돌아와 축복하고 부활절을 맞이 하셨다. 우리 모두 감명 받았다” (2025.4.22 머니투데이 기사 발췌)

 

두분의 삶이 이러하였다.

 

두분의 별세한 시간 간격이 길었다면 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아쉽지만 두덤덤 하게 기억할수도 있었으나 비슷한 시기에 하느님의 부름을 받으신 두분이시기에 가톨릭 신앙인이 훌륭하게 살면 어떻게 행동 하는게 맞는지 알게 해 주셨다.

 

거기에는 이웃과의 친교가 있었고 이웃사랑이 있었고 주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의식이 있었으며 성사의 은혜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실루엣이다.

 

토마스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 고백하던 예수님의 참 모습이다.

 

성체안에 자주 머물고 주님께 머물며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 갑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