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7월 3일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성 토마스 축일 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토마스 본인만 쏙 빼놓고 다른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목격하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내가 헌신을 했던 중요한 지인의 잔치에 자신만 초대를 받지 못한 느낌이랄까? 토마스 사도의 심정을 완전히 헤아릴수는 없지만 내가 토마스 사도라 할지라도 아주 많이 섭섭 했었을 것 같다. 대략 3년을 동거동락한 나를 어째서 주님은 외면 하셨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퍽이나 섭섭 했지 싶다.
토마스 사도의 섭섭함. 아쉬움을 예수님은 다 듣고 계셨을 것이다.
사랑의 주님.자비의 주님은 여기서 또 다른 반전을 준비 하신다.
토마스 사도를 위해 또 한번 더 발현을 하시게 된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사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앞에 한번 더 나타나신 모습이셨지만
내막을 안다면 그것은 바로 “온전히 사도 토마스”를 위한 발현임을 알게 된다.
토마스 사도는 그 사실을 알았기에 일주일간의 고뇌 섭섭함이 바로
그분께로 향하는 감사와 찬미 그리고 사랑의 감정으로 뒤덮여 지게 된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 20:28)
.
나는 이 대목에서 항상 울먹이면서 나직이 말하는 토마스 사도를 연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서 인정을 받아야 위신이 서고 체면이 서는 세상을 사는 어른들은
이런 따뜻하고 섬세하고 자비로운 그분의 손길을 경험하면 누구나 주저없이
무너지고 그분께로 마음을 열게 된다.
완고한 마음을 열어 젖히는 것은 또다른 완고함이 아니라
말랑말랑 하고 부드러운 관심과 사랑스런 말 한마디가 아닐까 한다.
여러 사도가 있지만 토마스 사도는 의심이 많은 사도라 생각 되었다.
하지만 토마스 사도의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거짓이 아닌 진실 그 자체인 예수님을 다시 바라 보게 된다.
나는 지금은 별세 하신 토마스 세례명을 가진 분을 알고 있다.
늘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하시고 보고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 열살
터울의 형님 이셨다. 뜻하지 않은 병으로 별세를 하셨지만
토마스 사도 축일이 되니 불현듯 그분이 생각이 난다.
사랑은 기억 해주는 것 이다.
먼저 다가 가서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을 해 주시니
나도 그분을 기억하고 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게 된다.
만일 내가 사랑한다면 먼저 기억해주고 이름을 불러 보자.
이웃이 아니라도 좋다. 아내도 좋고 자녀도 좋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조금은 떼고 바라보자.
그것이 기억하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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