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사순 3주 복음 묵상 (루카 13:1-9)

자유롭게 생각하고 평화를 이야기 합니다. 2025. 3. 22. 10:11
반응형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루카복음 (13:8-9)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 이시다.
 
비유를 들자면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교수 이신데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위해
 
유치원을 직접 찾아 가서  유치원생들을 가르치면서
 
풀이 해 주시는 격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인간세계에 오셔서  고차원의 진리를 풀이 해주시려면
 
가장 좋은 수단이 예화와 비유 일 것이며
 
그중에서도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볼수 있는
 
포도 나무의 비유가 가장 적절하게 다가갈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것도 에수님의 배려가 아닐까?
 
 
이번 주 복음말씀은 포도나무의 비유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를 바라보는 주인은 애가 탈것이며
 
많은 인부를 구해서 밭을 일구고 거름을 주는데도 
 
시간이 지나면서도 결과가 안 나오면 
 
가차없이 베어버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적 이해타산이 얽혀져 있기 때문 일것이다.
 
주인이 기다리는 인내심이 없으면 성립이 안되는 게임  일터인데
 
밭을 일구는 재배인은  조금만 더 기회를 주자는 말로
 
중재를 한다.
 
오 하느님. 당신 앞에서 의로울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기다려 주시지 않으셨다면 
 
베드로 사도 와   바오로  사도  도 없었을 것이고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없었을 것이며
 
프란치스코 성인도 없었을 것 입니다.
 
하루 하루 그분이 뜻이 과연 무엇인지 늘
 
되새기고 깨어 기도 할것을 주님은 바라고 계신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위해서 
 
가톨릭 신자들은  
 
주님께서 그러 하셨듯이
 
주변 이웃에게  인내하고  기회를 주고
 
마뜩하지 않더라도  먼저 손을 내미는 대범함도 있어야 겠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나와 의견이 달라서 마음을 닫았던 형제가 있었다.
 
그런데 고역이 뭔가 하니 매주 일요일 중심미사때 
 
그 형제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성당에 가는 많은 이유중에 하나가 마음의 평화도 있을 터인데
 
그 형제가 용서가 안되었다.
 
부끄럽지만 수년 동안 마음앓이를 하였다.
 
어느날 평일미사때  그 형제를 보고는  서먹서먹하게  지나쳤는데
 
성체조배를 하는 동안 주님이 말씀 하시는 듯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예수님 예수님도 저 형제를 사랑하시나요?
 
사랑하시겠지요?
 
예수님이 사랑하시니 저도 사랑하겠습니다."
 
이 독백을 하면서  미사를  마치고 나서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수고가 많다"는 말을 
 
먼저 건네게 되었는데  
 
그렇게도 할수 있었던 일이었다!!
 
 
용서가  어려운줄은 진작에 알았고 
용서가 안되어 수년을 마음 고생 했는데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은 고작 찰나에 불과했다.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아까운 나의 시간들.
 
가슴졸이고 불편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생각과 함께
 
참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생각 마저 들었다.
 
 
그러하니 용서를 하자. 그것도 빨리 말이다.
 
내가 살기위해서 그리고 주님 주신 시간을  몇초라도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용서 하는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