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신앙인의 기도(루카 18.9-14) 복음묵상

자유롭게 생각하고 평화를 이야기 합니다. 2025. 3. 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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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바치기위해 준비된 초와 성모님 그리고 십자고상.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루카 18:9-14)


 
 
 
 
 
신앙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두가지 열쇠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을 선물로 주셨다.
 
누군가 조금만 더 짧게 줄여 달라고 요청 한다면
 
“하느님 사랑.이웃 사랑” 이라고 말할수 있을것이고
또 줄여 달라고 한다면
“하느님.사랑”이란 말을 건네고 싶다.
 
Catholic 을 한자로 표기할 때
어느 훌륭한 현인이 天主敎 로 표기 하였다.
 
“하느님이 주인이신 믿음”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의 신자인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가 이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는지
한번쯤 돌아봤슴 한다.
 
지금으로부터 이천년전 어느날 회당에서 하느님께 읊조린 두사람
바리사이와 세리는
이천년 후인 오늘도 똑같이 등장한다.
 
아마도 지금도 그런 기도를 바치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 볼지도 모르겠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들여다 보면
바리사이는 자신의 기도기준을 타인에게 두고 있다.
“나는 세리보다 더 낫습니다”
 
바리사이의 시선은 하느님을 향한게 아니라 자신에게 향해 있고 비교를 통해
의인이라 생각 한다.
 
두번째로
“나는 일주일에 두번 단식하고 십일조를 바칩니다.”
 
단식과 십일조를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실 것은 아니겠지만
우선순위가 아닐것이다.
하느님은 드러나는 행동 보다는 이웃으로 눈을 돌려
자비를 베풀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더 귀하게 보실것이다.
 
그 점이 미약하거나 부족했다면 자신을 돌아보면서
솔직히 인정하고 “회개”를 통해서 더 큰 신앙인이 되기를 더 원하셨을 것이다.
 
반면  하느님이 더 의롭게 보신 세리를 들여다 보자.
 
세리는 처음부터 하느님 앞에 엎드린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혹자는 이렇게 말할것이다.
 
로마제국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동포의 고혈을 빨던 세리는
 
“당연히” 그런 독백을 할수 밖엔 없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세리가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할수도 있지 않았을까?
 
“요셉에게 부과할 세금을 선심을 써서 줄여 줬습니다”라고…
 
그러나 세리는 하느님께 겸손되이
 
“죄인을 (나 자신)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느님의 선처를 바람)”
 
정리하자면
 
1.신앙은 하느님과 나 자신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2.드러나는 행동보다는 나의 회개를 주님은 더 바라신다.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웃에게 밝은 미소 한번 더 건네며
충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주님께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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